원제 - Deadpool & Wolverine, 2024
감독 - 숀 레비
출연 - 라이언 레이놀즈, 휴 잭맨, 엠마 코린, 모레나 바카린
평범하게 자동차 딜러로 살아가고 있는 데드풀 앞에 TVA(시간관리국) 헌터들이 들이닥친다. TVA의 패러독스는 데드풀이 사는 세계선이 멸망하고 있다고 말하며, 중심인물인 울버린이 죽었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데드풀은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여러 차원을 넘나들며 적당한 울버린을 찾아 헤맨다. 겨우 적당한 울버린을 찾지만, 패러독스에 의해 보이드라는 공간으로 쫓겨난다. 그곳은 카산드라 노바라는 뮤턴트가 지배하는, 일종의 부적합 판결을 받거나 잊힌 뮤턴트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데드풀과 울버린, 둘은 보이드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2시간이 조금 넘는 상영 시간 동안, 영화는 정신없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 여러 가지 차원, 세계선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곳을 옮겨 다니고, 거기서 만난 인물들과 싸우거나 팀을 이루면서 사건들이 쉴 새 없이 벌어진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건 인정한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지루함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지루함을 잊는 대신, 정신없음을 주었다.
데드풀 캐릭터 성격이 시끄럽고, 수다스럽고, 말 많고, 물에 빠지면 입만 뜰 것이라는 걸 알고 영화를 봤지만, 시작하고 30분 만에 지쳐버렸다. 30분 동안 엄청난 양의 정보가 쉴 틈 없이 강제로 주입되는 기분이었다. 이건 그러니까, 적당한 액션과 적당한 스토리 진행, 그리고 적당한 인물 소개가 아니라, 누가 내 머리를 잡고 눈으로 빔을 쏘아서 정보를 마구마구 입력하는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데드풀의 모든 대사가 하나하나 뜯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냥 ‘그렇구나’하고 넘어가도 괜찮지만, 그러면 왜 그가 그 상황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가령 다른 차원에서 데리고 온 울버린을 패러독스에게 보여주면서 뮤지컬이 가능한 울버린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건 울버린의 배역을 밭은 배우가 뮤지컬 영화에 출연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마블의 모든 시리즈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다른 영화 내지는 TV 드라마도 알고 있고, 출연한 배우들의 사생활이나 출연작을 알고 있어야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거다. 아니, 내가 왜 데드풀과 울버린 배역을 맡은 배우의 출신국을 알아야 하고, 데드풀 배우의 부인 이름까지 알고 있어야 하는 거지? 거기다 DC 계열의 영화를 맡은 배우가 나오면 DC와 마블의 미묘한 사이에 관한 언급이 나오니 그런 것도 알아야 하고, 스타트렉의 외계인이 자주 하는 손 모양도 알아야 하고, 거기에 종종 등장하는 팝송의 가사와 영화 장면을 연결지어야 한다. 그리고 왜 데드풀이 그렇게 20세기 폭스 욕을 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후우, 사실 이런 거 다 몰라도 영화를 보는 건 상관없다. 그냥 남들 웃을 때 ‘뭐지?’하고 넘기거나 그냥 같이 웃어주고, 데드풀이 야한 농담이나 몸짓할 때 웃어주고, 피와 살덩어리와 뼈가 날리는 장면에서는 그냥 ‘으아’ 하면 되니까.
그런데 그러면 영화 보는 재미가 줄어들잖아?
그러니까 영화 보기 전에 공부가 필요한 시리즈다, 마블 영화들은. 드라마도 마찬가지고. 보면 재미는 있는데, 그 전처리가 좀 귀찮다. 물론 마블 시리즈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게 귀찮지 않을 것이다. 그 과정 자체가 즐거움이고 기다리는 시간조차 설레고 그럴 것이다. 하지만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마 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에이’ 그러면서 돌아설 것이다. 내가 그랬으니까. 아, 이건 일반화의 오류인가?
물론 마블 시리즈를 너무 좋아해서 드라마까지 챙겨보는 애인님의 권유로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보게 되었다. 그 전에 애인님이 같이 보자고 해도 거절한 작품이 꽤 있다. 예를 들면 어벤져스 시리즈……. 애인님 미안해요. 그리고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하여간 약간 그들만 보는 영화 같은 느낌? 보는 사람만 보는 그런 분위기?
그런데 보이드에서 등장한 뮤턴트라고 해야 하나, 마블 인물들은 뭐랄까, 더는 시리즈도 만들지 않고 다른 작품에서도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만 모아둔 느낌이다. 그리고 보이드에서 등장하지 않은, 카산드라에게 죽어서 이름만 나온 캐릭터는 시리즈가 만들어지거나 리메이크되는 자들이고 말이다. 아,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사람들에게서 잊혔을 때 사람이 죽는 거라는 만화 원피스의 대사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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