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The Tragedy of Y, 1932
작가 - 엘러리 퀸
병은 빨리빨리 치료하자! 키우지 말고!
드루리 레인이 나오는 두 번째 이야기.
대부호 요크 해터의 시체가 바닷가에 떠오르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미치광이 해터 집안’이라는 별명을 가진 해터 가에는 집안의 독불장군인 ‘에밀리’ 노부인을 비롯해서 방탕한 큰아들, 지적인 작가 둘째딸, 파티광에 문란한 막내딸 그리고 지체부자유로 태어나 노부인의 지극한 돌봄을 받지만 다른 형제들에게서는 무시당하는 큰딸 이외에 큰아들의 부인과 두 아이가 있다. 어딘지 모르게 다들 나사가 한두 개 빠져있는 인물들이다. 그리고 요크 해터의 사건이 잊혀질만한 무렵, 해터 가에서 독약을 이용한 살인 미수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연이어 터진 노부인의 살해사건. 경찰의 요청으로 사건에 개입하게 된 드루리 레인은 차분하게 수사에 임하는데…….
애거서 크리스티의 ‘비뚤어진 집 Crooked House, 1949’이 나왔을 때, 이 책과 설정이나 흐름이 비슷하다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둘 다 읽어본 입장에서 말하면, 비슷하긴 하다. 그 당시 살인 사건이야 어차피 비슷한 게 아니냐고 말 할 수도 있지만, 우선 두 작품에서 범인은 자기 스스로 트릭을 생각해냈다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발상을 그대로 따라한다. 게다가 집안에서 일어나는 범죄이니, 독약이나 약물이 사용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마 두 작품이 나왔을 당시에는 총보다는 독약이 더 인기있는 소재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이 서로를 사랑으로 감싸기보다는 증오하거나 무시한다. 더 일찍 누군가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집안이다. 하긴 그러니까 죽고 죽이는 거겠지. 마지막으로 범인의 정체가 비슷하다. 두 이야기에서 성별만 바뀌었을 뿐이지, 가족 내에서의 위치가 흡사하다. 그래서 누가 누구를 따라했다는 말이 생긴 모양이다.
굳이 개인적으로 점수를 주자면, 음……. 이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에 버금가는 일이지만 굳이 골라야 한다면 이 책에 한 0.00001 점 정도 더 주고 싶다. 이 작품의 섬세한 묘사는 사람들의 심리나 그 당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 때문에 가족 간의 갈등이나 대립점이 극명하게 드러나 있어서, 집안의 분위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한 인물이 어떤 행동이나 대사를 했을 때, 왜 그랬는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범인이 왜 그렇게 사람들을 죽이려고 했는지, 그 사람은 왜 그런 각본을 썼는지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런 부분이 좀 더 내 마음에 들었다.
드루리 레인은 앞서 읽은 ‘X의 비극 The Tragedy of X, 1932’에서처럼 너무도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것에서 결론을 도출해 범인을 지목한다. 읽으면서 왜 이 부분을 그냥 넘어갔는지 화가 날 정도였다. 그 흔적은 그런 상황에서밖에 나올 수 없었고, 그런 상황이 되려면 범인은 단 한사람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흔적을 별 시답잖은 것으로 여기면, 사건은 미궁에 빠지거나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하게 된다. 그래서 사건을 담당한 섬 경감이 꽤 많은 고생을 했다.
이야기 마지막 부분에서 드루리 레인은 다소 자책하는 듯한 뉘앙스의 말을 한다. 마지막 사건을 막을 수 있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함으로 다른 가족들의 명예를 지켰다고 해야 할까? 그 집안에서 명예를 지킬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지 모르지만, 아! 큰아들의 어린 자식들이 있었지. 어린 아이의 미래는 어른들이 지켜줘야 하는 법이다. 하여간 자신의 행위를 그렇게 정당화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을 죽게 했다는 죄책감은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죄책감은 전혀 느끼지 않았을 텐데…….
재미있는 것은 책에서는 해터 집안의 비밀, 그러니까 왜 아이들이 그렇게 어딘지 비정상적이 되었는지는 자세한 병명이 나오지 않는다. 그냥 부부가 서로에게 옮기고, 이후 아이들에게 병균이 유전되었다고만 나온다. 병명 대신 환자 차트에 검사 결과가 음성인지 양성인지 표기한 것으로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아마 그 시대에는 그 병명을 입 밖으로 내놓기 부끄러워하던 때였나 보다. 하지만 역자는 친절하게도 병명을 각주로 붙여놓았다.
이 책의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무분별한 성관계는 배우자는 물론이고 자자손손대대로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그러니 조심하자!
‘작년에 잡은 고등어보다 더 확실히 숨이 끊겼어요.’-p.79 시체를 앞에 두고 던진 섬 경감의 농담이 어쩐지 무시무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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