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The Remains, 2016
감독 - 토마스 델라 벨라
출연 - 토드 로우, 브룩 버틀러, 한나 노버그, 대시 윌리엄스
1891년, 한 심령술사의 집에 모인 사람들이 강령술을 시행한다. 하지만 너무도 강력한 악령이 등장하는 바람에 참가자들은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현재. 아빠와 두 딸 그리고 아들로 이루어진 한 가족이 그 집으로 이사한다. 십 대 후반인 사춘기 큰딸은 낡은 집이라며 시큰둥해하고, 아직 어린 둘째 딸과 아들은 큰 집이 마냥 좋기만 하다. 아빠는 아이들이 새집에서 엄마를 잃은 슬픔을 잊고 행복하게 살아주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둘째 딸이 이 집과 똑같이 생긴 인형의 집을 발견하면서부터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데…….
기본 설정은 어디선가 본 것처럼 익숙하다. 악령에 희생당한 사람들이 살던 집. 싼값에 새로 이사를 온 한 가족. 가족 구성원 중에는 문제가 있거나 심각한 반항기를 겪는 아이가 한 명 정도 있다. 그리고 열 살 미만의 어린 자녀 중에서 꼭 한 명에게는, 그 아이에게만 보이고 들리는 비밀 친구가 하나 생긴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그 비밀 친구가 악령일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어른들은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가, 막판에 가서야 믿어준다. 개중에는 이 설정들을 다 가진 작품도 있고, 한두 개만 사용하는 때도 있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머릿속에 작품 제목이 대여섯 개 이상 떠오른다면, 만나서 반갑다, 동지! 그 때문에 ‘하우스 호러’라고 불리는, 귀신 나오는 집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다 거기서 거기라는 느낌이 든다.
이 영화 역시 무척이나 익숙한 흐름으로 흘러갔다. 그래서 ‘설마 나 예지력이 있는 건가?’라는 뭔지 모를 뿌듯함마저 들었다. 어쩌면 그렇게 잘 들어맞던지, 돗자리라도 깔아야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 예지력은 개뿔, 있는 거라고는 드문드문 보이는 흰머리와 넉넉한 뱃살뿐이다. 그러니까 감독과 각본가가 영화를 너무 안일하게 만들었다는 거다.
난 그렇게 많이 바라는 사람이 아니다. 그냥 영화 중간중간에 몇 번 깜짝 놀라게 해주고, 분위기 좀 으스스하게 잡아주고, 마지막까지 보는 이의 마음을 조였다 풀어주는 반복적인 흐름을 유지하는 정도만 바랄 뿐이다. 어차피 인간의 상상력이야 거기서 거기고, 호러 영화의 설정이야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끌어 쓰는 거 다 아니까, 그러려니 하고 보는 편이다. 다만 분위기를 잘 잡아주고 강약 조절을 성의 있게 해주길 바랄 뿐이다. 물론 그래도 기존의 아이디어를 살짝 뒤틀어서 변형을 가하는 재기 넘치는 감독이나 작가는 있기 마련이다. 가뭄에 콩 나듯이 진짜 가끔 그런 작품을 보게 되면, ‘오오!’하고 행복해할 따름이다. 모든 감독과 작가에게 그런 걸 바라지는 않는다. 그러면 좋겠지만, 그건 꿈이라는 걸 알고 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호러 영화답게 흐름만 잘 잡아주길 바라는, 단순하고 소박한 희망을 품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영화, 그런 점에서는 꽝이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감독이나 작가 너무 편하게 만든 것 같았다. 기존에 있던 것들을 고대로 베껴서, 거기에 별다른 아이디어 첨가를 할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거기다 극이라면 ‘기승전결’ 내지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는 흐름을 가져야 하는데, 이 영화는 ‘기승결’ 또는 ‘발단-전개-결말’이라는 허술한 구조를 보였다. 무슨 머리가슴배로 구성된 곤충도 아니고.
그냥 유튜브에 있는 공포 영상을 보는 게 더 오싹하고 재미있었을 것 같았다. 보느라 시간 낭비하고, 리뷰 쓴다고 또 보느라 시간 낭비하고. 아, 진짜 시간이 금이라면 난 얼마나 허무하게 버린 걸까? 미안해, 내 시간아. 그리고 손들고 반성해, 이 영화를 보자고 한 과거의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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